사불급설 [ 駟不及舌 ] 駟 말 네 필 사,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舌 혀 설
위 말을 직역하면, 네 마리 말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도 혀와 빠르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당나라의 명재상 풍도(馮道)는 그의 설시(舌詩)에서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고 했고, ≪詩經(시경)≫ 大雅(대아) 抑篇(억편)에서도, “흰 구슬의 이지러진 것은 오히려 갈 수 있지만 이 말의 이지러진 것은 어찌할 수 없다”라고 했듯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계의 말은 예부터 많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화자구출(禍自口出)이요, 병자구입(炳自口入)」이란 문자도 다 같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사불급설[駟不及舌] 역시도 말을 조심해야한다는 비유로 한 말이다. 사[駟]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라는 뜻이니 얼마나 빠른 수레이겠는가. 그런데 그처럼 빠른 수레라도 한 번 뱉어져서 퍼지는 말은 붙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니, 말이 퍼지는 속도가 가히 비유할 데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비유인 것이다.
이 말은 ≪論語(논어)≫ 顔淵篇(안연편)에 나오는 子貢(자공)의 말이다. 棘子成(극자성)이란 사람이 자공을 보고 말했다. “군자는 質(질)만 있으면 그만이다. 文(문)이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그러자 자공은, “안타깝도다. 駟(사)도 혀를 미치지 못한다. 문이 질과 같고, 질이 문과 같다면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이 개나 양의 가죽과 같단 말인가”라고 그의 경솔한 말을 반박했다.
극자성은, 質(질)은 소박한 인간의 본성을 말하고, 文(문)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예의범절 등 외면치레를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실상 그로서는 호랑이 가죽이나 개 가죽을 같은 것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가끔 20, 30년 전에 촬영한 영상들을 대할 기회가 있어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말투가 지금과는 사뭇 다름에 놀랄 때가 많다. 마치 북한 사람들의 말투와 비슷하다. 말의 속도가 지금보다는 느리고 말투가 세련되지는 못하지만 말에서 풍기는 진정성이 있고 점잖은 어투가 지금보다 오히려 더 품격이 있어 보인다.
30년이래야 지나놓고 보면 눈 깜짝할 사이의 세월 밖에 되지 못하는 건데, 우리의 삶과 언행은 놀랄 정도로 급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사물과 제도가 발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언행이 변하는 길은 좋은 쪽으로만 가는 것은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언행이 갈수록 경솔해지고 거칠어져 가고 있고 계속하여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말은 갈수록 품격이 사라져가고 있다. 말을 함부로 하고 그로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도 말을 조심스럽게, 품격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일부러 지니고 살아갈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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