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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 및 격언

베는 석자라도 베틀 벌리기는 일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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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는 석자라도 베틀 벌리기는 일반이라.

베를 겨우 석자 밖에 짜지를 않는다 하더라도 베틀은 짜는 제 격식에 따라 틀어야 한다는 말로서 사소하거나 급하다하여 기본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가느다란 실을 서로 교차시켜 베를 짜나가는 작업은 정교하면서도 힘이 많이 드는 고단한 반복의 작업이다. 그러나 비록 한 자를 짜더라도 그 고단한 과정과 절차를 소홀히 하거나 생략해서는 직물이 만들어 지질 않는다.

1cm를 짜더라도 베틀의 작동 과정은 어느 것 하나 생략하거나 소홀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듯이 적다고 베틀을 기본대로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고는 일이 제대로 되질 않고 귀한 실만 버리는 꼴을 면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피상적으로 가벼이 여겨지는 사안이나 일들은 기본에 입각하여 원칙대로 하지 않고 가볍게, 쉽게 임하거나 처리함으로써 결국에는 그것이 사단이 되어 사달이 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고 경험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큰 사건들도 그 원인을 살펴보면 지켜야 하는 기본과 원칙을 건너뛰거나 소홀히 수행하는 데서 비롯된 경우가 허다하다.

 

30년 전 우리고향 읍내에 우리 마을 출신인 형이 2km 정도 떨어진 읍내의 길목 좋은 대로변에 조그마한 옷가게를 차려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읍내에 볼일이 있어 나갔는데 마침 그 형이 자기 가게 문 앞에 각목들을 얼기설기 묶어서 발 디딤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가게 문 상단 벽면에 무얼 그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가게 정문 쪽 위에 위치한 콘크리트 벽면에 가게이름 즉 상호를 써 넣기 위해 예비단계로 연필을 가지고 글자 당 50cm가 넘는 큰 글씨 형체를 하나하나 밑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밑 그리기가 완성되면 그 글씨들 몸통을 페인트로 칠하여 소위 간판을 만들겠다는 요량이었다.

헌데, 딛고 서서 작업을 하고 있는 디딤대를 보니 각목하나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 쪽으로 삐쭉 돌출되어 있고 이게 하필 못이 하나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위험했다. 해서 나는 그 형에게 나무 하나가 못이 박힌 채 길 쪽으로 좀 튀어 나와 있어서 보행자들에게 위험하니 먼저 톱으로 나무를 좀 잘라내고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 형은 길 다니는 사람들이 앞 못 보는 사람들도 아니니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며 내게 미소만 건네고 마는 것이었다. 더 이상의 조언은 작업을 방해하는 듯도 싶어서 절친한 사이였지만 나도 더는 권하지 못하고 수고하라며 가던 길을 가려는데 볼일 보고 돌아와서 차라도 한 잔하고 가라는 그 형의 말에 알았다는 대답을 하고 돌아섰다.

10m쯤 걸었을까, 뒤쪽에서 턱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이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들여왔다. 뒤를 돌아보니 한 아이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그 디딤돌 아래쪽에서 뒹굴고 있고 그 형은 디딤대에서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뒤돌아 달려가 보니 얼굴을 감싸고 있던 손가락 사이로 선홍빛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바로 그 형의 13살짜리 아들이었다.

 

어찌 된 사달일까. 학교를 파하여 집에 돌아오던 아이가 자기 가게 앞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본 아이다운 반가움과 자기 가게 앞에서 일상과 다른 무언가 색다른 일이 있는 것 같은 호기심이 앞선 상황에서 아빠!”하며 내달려오는데 그 문제의 돌출된 각목을 미처 보지 못하고 얼굴 쪽에 부딪치면서 넘어진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박혀있던 못이 아이의 눈 옆을 스치면서 약 5cm정도의 째지는 상처를 내고 만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눈을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 이후로 그 형은 매사에 원칙과 기본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되었다고 내게 멋쩍은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비단 이런 일들이 내 주변에만 일어나겠는가. 이 순간에도 작은 원칙하나 지키지 아니하여 귀한 생명들을 위협하고 나아가 잃게까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매사에 있어서 원칙을 지켜야한다. 2021년도 발생한 광주 학동재개발지구 내 5층 건물 해체작업을 하면서 해당업체가 해체원칙인 해체계획서대로 철거하지 않고 저비용으로 쉽게 단시간에 철거하다가 지나가던 차량과 무고한 시민들이 붕괴된 벽체에 의하여 고귀한 생명을 잃었고 광주시 화정동에서 시공 중이던 아파트가 붕괴되어 작업하시던 분들께서 귀한 목숨을 잃고 이를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어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도 시공사가 아주 작은 기본원칙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가 아니던가. 원칙에 충실한 나라가 되도록 우선 나부터 원칙을 고수하는 습관을 갖고자 다짐해본다.

 

참고로 195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는 베틀을 이용해 베를 짜는 모습을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베틀을 거의 접할 수가 없기에 베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베틀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자.

베틀은 명주 무명 삼베 같은 피륙을 짜는 약 2미터 길이의 목재 방직기구로서 여러 가지 도구와 부속품으로 조립되어 있는데, 크게는 베틀원체(몸통), 전력장치, 직포장치로 구분되고, 세부적으로는 선다리, 누운다리, 앞다리, 뒷다리, 앉을 개, 말코, 눌림대, 뱁댕이, 비거미, 눈섶 노리, 쇠꼬리 등등 그 명칭만도 약 30가지가 넘는 구조물과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손과 발로 움직여서 직물을 짜는 하나의 동력기구이다. 날실과 씨실이 교차되어 직물이 짜지도록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을 교차시킬 때마다 손과 발을 매번 움직이며 포목을 한 땀 한 땀 만들어 가는 것이니 실로 엄청난 횟수의 손발의 움직임이 요구되는, 우리 옛 어머님들의 고된 삶을 대변하던 기구인 것이다. 포목을 짤 때에 북이라는 배 모양을 한 나무통에 씨실의 실꾸리를 넣어 날실사이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수도 없이 옮기며 직물을 짜는 것인데, 수 천 번 북을 옮기고 수 천 번 발을 움직인들 포목 1m를 넘지 못하는 일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단한 작업이었겠는가. 그 베틀 작업이라는 것도 분주하고 고된 농사일을 하는 중에 잠시 잠깐 쉬는 동안에 하는 작업이요, 고단했던 하루를 마치고 잠을 청해야 하는 시간에 잠을 줄여가면서 하던 일이었으니 그 얼마나 힘겨우셨겠는가. 그렇다고 어느 한 공정도 건너뛰거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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