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배도 맛 들일 탓
무엇이든지 처음 접하는 것은 마음에 차지 않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들여가며 시간이 지나노라면 그 나름대로 또한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어진다는 말이다.
나는 그야말로 가난한 시골 농부 집안의 출신이다. 공부는 그럭저럭했던 탓에 용케 서울의 모 대학에 입학을 했지만 재정적으로 빈곤했던 시골 집안 형편상 재정적인 지원이 원활치 못하였고, 그러다 보니 책상머리에 앉아 곱게 공부만하며 대학 생활을 할 입장이 아니어서 수입을 위한 아르바이트가 불가피했다.
그래서 일단 개강하기 전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잡기로 하되 위치는 시간상 학교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는 개괄적인 생각을 지닌 채 우선 학교 옆에 겨우 혼자만 누울 수 있는 자취방을 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개강 7일 전 어느 날, 집을 나서서 아르바이트를 할 만한 곳을 찾는 답시고 무작정 길거리로 나섰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생전 처음 접하는 대도시의 물정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거니와 필요한 정보를 얻을만한 곳도 없고 그런 지인도 아직은 없는 터라 무작정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자고 나선 것이다. 어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찾아 나서서 길거리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데, 학교로부터 약 2키로 미터 거리의 지점에서 건물의 규모가 좀 있어 보이고 시골에선 볼 수 없었던 밝은 조명 불빛들이 내부에 가득한 한 식당 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러나 막상 들어서려니 용기가 나질 않았다. 10여분 동안 식당 옆에서 망설이다가 어차피 가야하는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여린 마음을 스스로 다지면서 정문 통과하여 주뼛주뼛 안으로 들어서는데, 테이블을 행주로 청소 중이던 3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더니 손님으로 인식하시고는 어서 오라는 인사와 동시에 나를 식당 테이블 쪽으로 안내하려하였다. 그래서 나는 손님이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어서 왔다며 아무일이나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아주머니는 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잠깐 기다리라며 식당 가장 안쪽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2분여가 지났는데도 아주머니는 나타나질 않고 주변 손님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우두커니 그 아주머니가 사라진 쪽만 바라보고 있던 나로서는 초조하고도 무척이나 긴 시간이 흐른 듯 했다.
그렇게 2분여가 지나자, 보기에도 사장 같아 보이는 어른 한 분이 그 아주머니와 함께 내게로 다가 왔다. 사장이었다. 공손히 허리굽혀 인사를 했는데 사장 역시도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따라오라며 자신이 나오던 식 당 저 안 쪽으로 다시 앞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따라간 곳은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이었지만 책상과 응접소파가 있는 소위 사장실이라는 곳이었다.
사장은 나에게 소파에 앉으라며 학생 같아 보이는데 뭐하는 사람이냐고 바로 신분 탐색을 해 오셨다. 해서 시골에서 올라와 이 근처에 있는 모 대학에 올해 입학한 신입생인데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사정을 말씀드렸다. 애절한 나의 사정을 들은 사장은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격려의 말과 함께 자신도 나와 같은 또래의 손자가 있다며 나를 안쓰러워하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자기 식당에 일할 빈자리는 없는데, 꼭 하겠다면 식당에 식사하러 오는 택시기사들의 차를 간단히 세차해주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순간 하필 세차 같은 하찮은 일인가 싶었지만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닌 입장임을 바로 자각한 나는 하겠노라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해서 매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세차를 해주고 1일 6,000원을 받는 직장에 취직(^^)이 된 것이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에 1,200원 하던 때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아직도 차가운 기온 속에서 막상 물에 젖은 걸레를 손에 들고 들어오는 차마다 세차하는 일을 해보니 세차 자체가 무슨 재미가 있거나 성취감이 있거나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닌데 설상가상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새로이 부각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적지 않은 걱정거리로 앞서고 있었다.
이유는 세차 위치가 식당 주차장으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인도가 바로 인접해 있는데, 그 인도가 바로 학교 쪽으로 가는 길목의 연장선상의 길이라는 사실이 새삼 그제야 문제로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앞으로 같은 학과 생들이 오가면서 걸레를 들고 세차하는 나를 보게 되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되는 이들이 확산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전에 차분하게 좀 더 깊이 생각하지 못하여 섣불리 결정한 일이라는 깊은 후회가 밀려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사장과 약속한 일이니 어쩔 수가 없는 일. 해서 세차할 때는 모자를 꾹 눌러써서 최대한 얼굴을 가리는 것으로 대책을 세웠고 학과생들에게 알려지는 문제에 대해선 내 자신의 현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당당함을 갖기로 마음을 다 잡았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그렇게 걱정을 덜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하찮고 즐거움도 없으며 어떤 가치도 부여할 수 없는, 부끄럽기도 한 세차 일을 마지못해 억지로 해나가던 하루 이틀이 사흘이 지나고 어느 덧 2주쯤의 시간이더 지났을 쯤이었다.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이 많이 들던 세차 일에서 나름 재미와 성취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 깔끔을 떨고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성격 탓인지는 모르나 오염된 차의 외부를 닦아내다보니 깨끗해지는 차의 유리와 외장에서 선명한 빛들이 올라오는 모습이 갈수록 묘한 매력과 성취감을 안겨 주었고 그러한 것이 내게 하나의 재미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제 세차작업은 차를 세차한다는 것보다는 세차 자체에서 느껴지는 재미와 성취감에 몰입하고 있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지난 부정적인 생각과 기분들을 차츰 떨쳐버리며 한층 기분 좋은 상태로 정성을 기울여 세차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한 날들이 지나가면서 택시기사 분들이 세차에 만족스러워 하며 사장님에게 감사와 칭송을 하는 일들이 늘어났고 기분 좋은 사장님은 또한 나를 격려 해주는 흐뭇한 일들이 자주 있게 됐었다. 그러나 솔직히 더 재미있는 일은 따로 있었다. 나이로 보아 아버지 뻘이 대부분이신 택시기사 분들이 내가 시골에서 상경한 형편이 어려운 아르바이트생임을 알게 되어 용돈이라며 1,000원짜리 지폐를 건네주는 일이 간간히 발생한 것이다. 아마 자신들의 자녀들이나 손주들을 떠올리시며 또래의 어려운 한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동정심이나 격려의 마음과 심정에서 자연스레 묻어나온 온정이었을 것이다. 물론 건네주시는 돈보다는 그 마음들에서 전해져오는 따뜻함이 참으로 감사했지만 한 푼 한 푼이 절실했던 나로서는 솔직히 그 금쪽같은 용돈들 또한 그 어찌 큰 재미가 아닐 수가 있었겠는가.
그렇게 해서 나는 기사 분들과 차츰 아는 사이가 되었고 마치 삼촌들의 차를 닦듯이 더욱 정성들여 닦아 드리면서 내 고단했던 젊음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 그렇게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처음에는 하찮고 의미 없는 일로 여겼던 세차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과 친밀해지는 과정이 생겼고 그래서 재미와 성취감도 있었으며 이런저런 따뜻하고 감사한 인생살이도 스며있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세상사 모든 일이란 각각의 그 모양과 내용과 의미가 조금 다르고 하는 방법이 다를 뿐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직업은 귀천이 없다는 말을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을 경험했던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접하신 귀하는 현재 자신의 일이 신 배와 같이 신맛만 나고 있는가?
조금만 기다려 보라. 그 일속에 묻혀있는 빛을 찾아보라. 참 맛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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