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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

일편단심 善竹橋의 충절 善竹橋의 충절 선죽교는 고려시대 때 화강석으로 축조된 널다리로서 개성시 선죽동에 소재하고 있다. 남대문에서 동쪽 약 1km 거리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길이는 8.35m, 너비는 3.36m 규모로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이다. 당초에는 북한의 국보급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로 변경되었다. 이 선죽교는 태조 왕건이 919년(태조 1) 송도(지금의 개성시)의 시가지를 정비할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고려시대 때 석교(石橋)에는 돌난간이 없었는데, 이 선죽교는 1780년(정조 4)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설치하였다. 선죽교는 1392년(조선 태조 즉위년) 정몽주가 후에 태종이 된 이방원의 심복 조영규에게 피살된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는 선지교(善地橋)라.. 더보기
황표정사 [黃標政事] 세종대왕의 맏아들이었으며 조선조 제5대 왕(재위 1450∼1452)이었던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에 병으로 승하하자 나라의 임금 자리를 한시도 비워둘 수 없는 탓에, 문종 2년 5월,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에서 문종의 아들인 12세의 어린 단종(재위 1452∼1455)을 제6대 왕으로 옥좌에 올리는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단종이 아무리 총명하다할 지라도 그 복잡다단한 국사를 친히 결재하고, 정치상의 온갖 중요한 정무들을 친히 수행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미 어머니,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안 계셔서 수렴청정(垂簾聽政)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임금이니 임금노릇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관리들을 나라와 조정의 상황에 따라 수시로 적재적소에 이동 임명도 하고 또한 새로운 관리들도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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