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종지도
삼종지도〔三 석 삼, 從 좇을 종, 之 갈 지, 道 길도〕
≪예기≫의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나오는 말로서, 여자가 따라야 할 세 가지 도리를 이른 말이다. 시집가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고 시집을 가면 남편의 의사와 처리에 순종해야하며,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뜻이니, 결국 여자는 평생 자기 뜻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굳이 명문화해서까지 강조한 말이지만, 지금과는 정서가 너무나도 다른 예전의 말이 되었다.
이 말을 당연시 받아들였던 그 당시에는 신체적인 힘이 경제활동의 주요 원천이 되었고 그러한 경제활동도 주로 남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때인 만큼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 우위적인 시대였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해서 한 가정을 이루는 부부의 나이 관계를 보면, 보통 남편이 아내보다는 2~4살 위였으니 당연히 남편이 가장으로서 우위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렇게 남자는 주로 밖으로 나가서 힘을 사용한 경제활동을 통해 가정을 건사해 나가는 한편 여성은 밖으로의 출입보다는 주로 집안 내에서 집안일을 맡아서 했다.
당시에는 여성이 바깥출입을 할 시에는 얼굴을 가리기 위하여 장옷, 쓰개치마, 너울, 처네 등의 얼굴가리개 즉 ‘면의(面衣)’를 썼다.(‘면의’는 ‘얼굴을 가리는 옷’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여자의 외부활동은 극히 제한되었고 그러다보니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남자보다는 낮은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틀로 이루어진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가정을 잘 건사해 나가야 하는 가장과 내조자로서 살아가던 하나의 질서이었다.. 어느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해도 하나요, 달도 하나’이듯 가정도 마찬가지로 가장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가장이 둘이면 매사에 의견이 분분하고 그러다 보면 트러블이 자주, 많이 발생하게 된다. 회사에도 회사운영 측면에서는 사장이 둘이라면 좋은 의견도 더 많을 것이고 한 사람의 사장이 부족한 면을 다른 사장이 보완할 수 있어서 회사가 더 잘 운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상되듯이 의견충돌이 잦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바,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가고자 하다 보면 상호관계는 협력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라이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왜 여자만 남자의 생각과 처분에 따라야 하느냐며 반기를 들고 여자도 가장의 한 축으로서 발언권을 가지고 가장인 남편과 동등한 지위에서 동등한 가장권을 행사한다면 결국에는 잦은 불화가 발생할 것이다. 지금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많아지고 경제적인 독립이 가능해지다보니 갈수록 여성의 지위가 높아지고 있고 남녀평등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정착되면서 삼종지도의 의미와 입지가 정말 무색해지는 사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정에는 가장이 둘이 된 사회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남성을 가장으로 한 기존의 틀과 질서가 유지되기가 만만치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혼이 흠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사회가 되었다.
경제학에서는 우리인간을 가장 합리적인 존재로 보지만 우리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이고 불안전하며 이래저래 부족함이 너무도 많은 존재이다. 그러니만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서 사는 곳에서는 일정한 질서가 있고 구성원이 그것을 준수하여야 만이 그나마 그 조직의 결속과 유지에 문제가 덜 발생한다. 그러다보면 누군가는 마음에 차지 않더라도 준수해야하는 희생을 강요당하고 누군가는 그러한 부당한 위치에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한 질서가 어느 한 쪽에게는 다소 부당하고 불합리하지만 사람이 더불어 사는 조직 속에는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가정도 잘 건사해 나가자면 한 사람의 리더를 중심으로 해서 원활하게 흘러가는 순종과 협력이 때론 부당하게 요구되는 질서가 필요한 것이다. 남편이 가장이든 아내가 가장이든 한 사람만의 가장과 한 사람만의 내조가 필요한 것이다.
누군가는 해가 되고 누군가는 그 해의 조명을 받아 빛을 비추는 달이 되어야 원활하게 순행하는 것이다. 오늘도 지구가 일정한 자전과 공전을 비롯하여 일정한 우주철칙의 질서 속에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고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혼돈은 존재를 위협한다. 오직 질서만이 존재를 유지한다.
삼종지도의 맥락에서 여자만이 희생을 강요받았던 남자 중심의 부당한 질서를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것을 대변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라는 노래다.
이 노래가 나온 때, 즉 우리사회가 삼종지도를 거부감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그 마지막 시절이 언제였는지 아시는가? 언뜻 생각하면 조선시대에나 나왔어야 하는 노래일 듯싶다.
그런데 놀랍다. 이 노래는 바로 1989년 3월 10일에 세상에 선을 보여 지금까지 애창되는 노래이다. 이러한 노래가사가 대중가요로서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던 사회가 불과 얼마 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삼종지도가 말이 안 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만큼 이 사회가 급변한 것이다. 그 변화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견딜 수가 없도록 외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만 한다고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달래어 가면서 비탈진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한 많은 우리 어머니들께서 그 부당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말 한 마디 못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참고 눈물로 보내는 여자의 일생’을 사신 것이다.
가정을 잘 건사하고 자식들을 잘 키워내기 위하여 남편을 당연한 가장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장의 의견에 따르며 질서를 유지하는 희생을 강요받은 것이다. 그러한 희생으로 오늘날의 이 나라가 경제대국을 이루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아니다. 필자는 이 나라가 이렇게 번영을 누린 그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우리 어머니들, 즉 달로서의 아내들의 희생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한 질서가 남존여비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확산되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 가정들에 그 부당한 질서는 있어야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은 필자의 고루하고 잘못된 견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