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어망전
득어망전 (得 얻을 득, 漁고기 어, 忘 잊을 망, 筌 통발 전)
이 말은 ‘장자’의 외물편(外物篇)에 있는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말에서 유래된 말인데, 이 ‘득어망전’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자면, 고기를 잡은 후에 그 고기를 잡았던 통발을 이내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해서, 이 말은 ‘목적을 달성하면 그동안 쓰이던 사물이나 사람은 잊어버린다.’ ‘사소한 일에 얽매여 큰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학문이 성취되면 책이 무용하게 된다’, ‘근본을 확립하면 지엽적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등의 여러 의미로 쓰이나, 나는 이 말을 도와주었던 고마운 사람과 그 은혜를 이내 잊어버리는 세태에 일침을 가하는 의미로서의 뜻에 무게를 두고 얘기해 보고자 한다.
어느 날 퇴근길의 술자리에서 직장 다른 부서의 한 후배가 한 가지 고민을 털어 놓으며 직장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뜻밖의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직장 내에선 별 문제없이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해 나가는 친구로서 직장 내에선 좋은 평을 받는 직원이기에 사퇴하겠다는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퇴를 하고자 했던 그 배경과 이유의 일이 이렇다.
어느 날 부장이 자신에게 부당한 업무 지시를 하였는데 하느니 못하느니 하는 괴정에서 언쟁이 좀 있었는데, 이 부장이라는 사람이 체신 머리 없이 사장에게 그 길로 달려가서 그 후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험담하고 폄하하며 그 후배를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시켜달라고 요청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해서 사장으로부터 ‘고약한 놈’으로 찍히게 된 후배는 즉시 사장의 호출을 받아 사장실로 들어갔는데 들어서자마자 사장이 노발대발하면서 사실과는 좀 안 맞는 내용으로 호되게 질책을 하였고 이 후배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기분으로 하늘같은 사장의 꾸지람에 변명할 엄두도 못내고 그냥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남기고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이끌고 사장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부장이라는 사람이 그만한 일로 사장에게 직접 고하며 조치를 요구하는 경우도 드문 일이고 또 직원간의 사적인 일로 사장이 직접 불러서 야단을 치는 일도 거의 없는 일이기에 이 후배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장의 눈 밖에 난 상황이다 보니 더 이상 직장에 나올 생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후배에게 사퇴할 때 하더라도 사장님을 찾아뵙고, “제가 사장님의 부하로서 사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리고 실망을 안겨드리고 있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사장님께서 저애 대해 좀 오해하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소명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면서 그 부장이 폄하에 의해 생긴 사장의 오해 부분을 사실대로 바로 잡아드리는 기회는 가져야 한다. 그것은 당신이 당연한 해야 할 일이고 또한 직원으로서 상사에게 해야 할 도리이다.”라며 정면으로 돌파할 것을 권했었다. 그러자 그 후배의 눈빛이 반짝임과 동시에 한 번 그리해보겠노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결재를 받으러 사장실에 들어간 김에 사장님에게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다는 양해를 구한 후에 그 후배로부터 들은 얘기는 모른 척하면서 우연스럽게 말하는 것처럼 그 후배에 대한 이런저런 장점을 말씀드리면서 그 후배를 눈 여겨 보셨다가 쓸 만한 자리가 있을 때에 쓰시면 조직에 좋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시며 얼마 전에 그 부서에서 그 팀장(후배)과 관련하여 좀 잡음이 있어서 마땅찮게 여기고 있었는데도 그 팀장에 대해 오해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마 사장의 평소 성격을 미루어 보아 그 후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선 모든 채널을 통해 파악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3일 쯤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점심시간에 구내식당에서 만난 후배에게 내가 사장에게 했던 얘기는 하지 않고 일전에 권유한대로 사장님을 찾아뵈었냐고 물었더니 얼굴에 웃음기가 번지면서 어제 그리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사장님이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더니 알았다고 하면서 뭔가 우호적인 반응이었다고 했다.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4일이 지난 날 그야말로 파격적인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사장에게 찍혔던 이 후배가 느닷없이 비서실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사장의 최고의 신임을 받는 것이다. 그야말로 사장의 오른 팔이 된 것이다. 최고의 영전이었다. 나는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축하한다고 했더니, 축하해줘서 감사하다며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순간 ‘뭐지?’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오후에, 승진과 함께 다른 부서의 과장으로 발령이 난 전 비서실장에게 축하인사도 할 겸해서 그를 찾아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비서실장으로 발령 난 그 후배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전 비서실장은 사장이 어느 날 그 후배에 대해서 파악해보라는 지시가 있어서 여러 통로를 통해 다방면으로 파악하여 그 내용을 사실대로 사장에게 보고했는데, 그 후 바로 비서실장으로 발령을 내더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그 부장의 모함에 대한 사장의 무언적인 훈계, 나의 사장에 대한 건의, 후배의 독대 그리고 그 후배에 대한 사실적인 평가로 얻어진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배에게 했던 내 권고와 사장에게 건의한 일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나친 아전인수적인 생각일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그 후배는 사장의 신임을 얻으며 매번 파격적으로 승승장구하였다.
그런데 그 후배의 나에 대한 모습을 살펴보자.
비서실장으로 영전하면서 그는 나를 피하는 느낌이었고 나를 좋아하며 따르던 그 이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도움을 주었다하여 그만큼 받아야 한다는 소인배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냥 “선배님, 제가 그 어려울 때에 막막한 마음에서 좋아하는 선배님께나 내 고민을 털어 놓고자 푸념을 했었는데 선배님이 좋은 조언을 해주어서 사장님의 오해도 풀고 이렇게 좋은 일도 생겼네요.라고 하면 되는 일이고 또 당연히 그런 정도의 말로 서로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얘기가 아니겠는가.
솔직히 좀 서운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어떤 이유에서건 그 한 마디의 말도 내놓을 만한 마음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세태인가 싶어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이 새삼 더욱 스산한 느낌으로 다가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도 가슴 저 깊은 한 구석에서는 작은 그림자가 사라졌다가도 간간히 그늘이 지곤 한다.
거센 파도가 일렁이는 세상, 함께 고민하고 함께 헤치며 함께 살아가자. 그리고 고맙다고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또 헤쳐 나갈 힘을 실어주자.